갤러리2에서는 신건우 개인전 <蝕>(식)을 개최한다.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신이나 인간의 무의식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을 ‘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 개념은 추상적인 원형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구도자나 수행자의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는 오랫동안 탐구해온 ‘식’의 개념을 간결한 부조와 조각 작품으로 표현했다. 12점의 신작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11월 6일까지 이어진다.
신건우 개인전 <蝕>은 먹을 ‘식(食)’자에 벌레 ‘충(蟲)자를 쓰는 좀먹을 ‘식’자다. ‘식’은 먹어 들어간다는 뜻이니 마이너스의 요소다. 반대로 인간을 비롯해 물질은 존재하는 것이니 플러스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이렇게 현실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 의식과 무의식, 물질과 비물질, 존재와 부재, 탄생과 죽음 등 플러스 요소와 마이너스 요소가 공존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형태가 없는 ‘어떤 것’, 그러나 분명 ‘존재하는 것’. 이것을 표현하기 위한 개념이 바로 ‘식’이다.
신과 종교, 신화, 인간의 무의식 등 그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주제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을 형태로 구체화 시키는데 모티프가 된 것은 관엽식물인 몬스테라(Monstera)다. 몬스테라는 열대성 기후의 많은 비를 이겨내기 위해 잎에 구멍이 나 있는데, 작가는 이러한 생태적인 이유와 별개로 잎에 생긴 기이한 구멍에 관심을 두게 됐다. 자연적인 잎의 형태에 마치 추상적인 원형이 ‘먹어 들어가는 듯한’ 형상은 우리의 삶에 내재된 비가시적인 존재의 형상으로 치환되었다.
그동안 부조를 주로 선보여 온 신건우는 이번 전시에서 조각에 주력했다. 그는 부조를 완성하기 위한 화면의 내러티브와 복잡한 제작 과정을 생략하고 더 간단명료하게 ‘식’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를 주제로 가장 먼저 제작한 작품은 야자수 조화를 브론즈(청동)로 캐스팅한
<식-Blue Pagoda>와 <식-Black Pagoda>는 실제로 춘천 서상리의 삼층석탑과 화순 운주사의 발형 다층석탑을 모각한 작품이다. 이 또한 원형이 탑의 일부를 먹어 들어가고 있다. 작가가 여행하면서 본 실제 탑이 작업의 모티프가 되었다. 하지만 작가는 탑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여행길에 만난 탑의 형태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탑의 의미나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는 비가시적인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든 식물이든 사물이든.
‘식’의 개념을 인식하고 나서 부조 작업에도 변화가 생겼다. 기존의 작업에는 거대한 내러티브가 있었지만, 이번 신작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설명하기보다는 하나의 간결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그 ‘이면’에 있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화면이 단순해진 만큼 중심이 되는 인물은 더욱더 세밀하게 묘사되었다.
신건우의 이번 전시는 15년 동안의 작업을 되돌아본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자신의 작업을 복기했을 때, 시기마다 신이나 종교, 신화, 사회 문제 등 관심을 가졌던 주제는 다르지만 묘하게 자신이 찾고자 하는 대상이 모든 작업에 들어있었다고 한다. 그 안에서 작가는 뭔가 관통하는 흐름을 인식하게 됐으며 기존의 개념이나 단어로 명명할 수 없는 그 흐름을 ‘식’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앞으로 작업은 계속 변하겠지만 이 주제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식’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변하지 않을 것이다.
204, Pyeongchang-gil
Jongno-gu
Seoul, 03004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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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2 3448 2112
Tuesday – Saturday
10am – 7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