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시는 팬데믹으로 인해 지난 2년 동안 때를 기다렸다.
2020년 한영수문화재단에서 한영수 작가의 네 번째 사진집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를 출간하면서 백아트 서울에서의 출간 기념 개인전을 계획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이제야 전시를 개최하게 된 것. 네 번째 사진집은 세계적으로 조용한 인기를 누리며 2쇄를 찍었으며, 수록 사진을 작품으로 볼 수 있는 전시는 이 번이 처음이다. 첫 공개하는 작품들도 있어 흥미롭다. 그 시절 한국 여성을 주제로 한 전시이며, 남성의 사진도 함께 볼 수 있다.
이번 백아트 서울 전시가 기존 전시와 다른 점은 오롯이 한영수 작가만의 감성이 드러나는 작품들만을 선별하였다는 점이다. 시대를 아우르는 한영수 작가의 시선은 모던하고 세련되며 또 강렬하다.
최근 한영수문화재단은 새로운 협업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이번 전시는 롯데 잠실 서울스카이의 <시간, 하늘에 그리다: 한영수 미디어 전>, 신세계 라이카 스토어 <우리가 모르는 도시> 또 류가헌갤러리 <그들이 있던 시간: 한영수·이노우에 코지 사진전>과는 또 다른 모더니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를 관람하는 이들은 한영수 작가의 시선을 따라 어려운 시기였지만 당당함과 낭만을 즐겼던 그때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한선정 대표는 한영수 작가가 살아 있었다면 관람객에게 자신과 똑같이 설명했을 것이라고 했다. 팬데믹의 종식을 알리는 봄바람을 몰고 올 따뜻한 전시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비극의 그을음으로 뒤덮인 채, 혼란의 한복판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영혼이 생명을 이어가려는 대단한 결의를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또한 매우 심오한 것입니다. (한영수)
이번 전시의 시작이 된 <연분홍 치마가 봄 바람에>는 한영수문화재단이 발간한 네 번째 사진집이다. <서울 모던 타임즈>(2014년)와 <꿈결 같은 시절>(2015), <시간 속의 강>(2017년) 등은 모두 한선정 대표가 한영수 작가의 작고 이후 그가 남긴 작품들을 보고 15년간의 자료 조사와 기획 작업을 거친 후 발간하고 있는 시리즈이다. 한영수 작가가 남긴 평생의 작품들을 새롭게 분류하고 책을 출간하면서 예상보다 많은 젊은 팬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한영수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많은 문의가 오고 있다.
한영수 작가의 작품은 1950~1960년대 우리나라 현실에 대한 선입견을 깼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안겼다. 전쟁 이후 사람들이 궁핍하고 고단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모던했던 시대의 모습을 더했다는 점에서 세계의 호평을 받았다. 또한 그의 작품이 근대 미술사 안에서 모더니즘의 선구자로서 자리매김 하였다는 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한영수 작가는 광고 사진으로 유명했다. 그의 광고 사진 속 화려한 여성과 다큐멘터리 사진 속 현실의 여성은 분명히 다르지만 일종의 공통 분모를 갖는다. 광고 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과의 공통점은 모더니즘의 발현이다. 한영수 작가는 근대 여성의 모습에 관심이 많았으며, 여성을 모던하게 표현하는 것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러한 그의 재능이 광고 사진에서 더욱 빛을 발했던 것이다.
한선정 대표는 이 자신감 넘치고 세련된 여성들의 사진을 보고 이 여성들은 누구인지 호기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그 여성들은 왜 이런 모습으로 기억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었는지, 작가가 그 순간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여성'을 주제로 한 사진집을 만들게 되었다.
LA카운티 미술관 한국미술 담당 큐레이터 버지니아 문은 평론의 글을 통해 한영수 작가의 작품에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영향에 대한 오마주인 '무의식적인 순간'을 발견했다고 칭송한다.
"까르띠에-브레송은 거리의 모습을 포착하는 '캔디드 사진(candid photo)'이 추구하는 구도와 방법론의 대가였다. 이러한 캔디드 사진의 영향을 통해 한영수는 평면적 형태와 입체감,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는 순간들에 구조를 부여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한영수는 그런 순간이 오기를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리는 무한한 인내심을 가져야 했다. (중략) 하지만 이런 사진들을 보면 이 장면이 작가에 의해 연출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며, 사진 속 주인공들이 사진에 찍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오히려 그들이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까르띠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과는 또 다른, '무의식적 순간'을 드러낸다."
또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김수진 학예연구관은 한영수 작가는 평범한 일상 생활을 미학적으로 포착한 사진가라고 평했다. 시장에서나 번화가에서나 당당하고 도도한 근대 여성의 모습은 피사체에 사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순간을 낚아챈 촬영 덕분에 얻어진 것이다.
"전쟁은 그것이 가져오는 가난과 모욕 때문에, 억눌려 있거나 눈치채지 못했던 여성의 내면을 끄집어낸다. (중략) 한영수가 포착한 이 여성-이미지는 밀어 올려진, 살아남아 삶을 살아가는 여성의 내면이다. 이제야 비로소 한영수가 왜 이 여성들에게 매혹되었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한영수는 왜 그렇게 많은 여성들을 찍었을까? 단지 그가 모더니스트였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전후 복구의 문화적 중심지대인 명동에 출현한 양장 차림의 여성-이미지만으로 관심을 그쳤어야 한다. 하지만 보다시피 한영수는 서울의 변두리에서부터 시장통까지, 부산과 강원도에서, 그리고 명동의 캬바레 앞에서 조차도 생계를 이어가고 아이들을 건사하며 사람을 살리고 있는 여성의 신체와 내면을 만나고 있다."가련하거나 무기력하거나, 요염하게 꾸며지지 않은 씩씩한 여성의 모습을 그의 사진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어 다행이다. 한영수 작가는 전쟁의 상처를 넘어서 백화점 앞과 시장, 부산과 강원도, 명동과 남대문에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여성에게 매혹되었던 것이다.
광고 사진가로 유명했던 한영수 작가가 유머와 낭만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던 것은 한동안 잊혀져 있었다. 딸인 한영수문화재단 한선정 대표조차, 아버지의 작고 이후 수많은 필름과 밀착 인화를 발견하고 나서야 사진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한선정 대표는 2남 3녀 중 셋째 딸로서, 대부분의 한국 부녀가 그렇듯이 한영수 작가와 다정한 관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사진과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으며, 한영수문화재단을 만들어 모든 사진 책은 그녀가 직접 디자인하고 있다.
"사진집을 시리즈로 출간하기로 마음먹고, 총 7개의 주제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3권의 책이 더 출간될 예정입니다. 또한 이와 함께 사진집 <그들이 있던 시간(The time they were)>와 같은 국내외 사진가들과 함께하는 사진집과 한영수 작품 연구 논문집들도 준비 중입니다."(한선정 대표)
한선정 대표는 지금까지 책과 전시를 통해 1950~1960년대 작품들이 소개했고, 앞으로도 1990년대까지의 작업을 새롭게 소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999년 한영수 작가의 첫 유작 전시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연 것도 한선정 대표의 공이다. 1998년 당시 헝가리 사진박물관(Hungarian House of Photography)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녀는 아버지의 사진집을 관장에게 선물했다. 관장은 한영수 작가가 유럽의 거장과 어깨를 견줄만할 작가라고 찬사를 보내며 당장 전시를 제안했다. 1999년 1월 한영수 작가가 갑자기 작고하게 되자, 이 전시 <마스터(MESTER)>는 유작전이 되어 헝가리 사람들을 사로 잡은 것.
해방의 기쁨도 잠깐, 어느 날 갑자기 이 땅에 38선이 그어지더니, 1950년대는 이렇듯 엄청난 비극과 함께 시작되었다. 전쟁이 한창일 무렵, 나는 현역의 신분으로 최전방을 옮겨 다니며 이러한 비극을 체험해야 했고, 또 숱하게 많은 현장을 목격하며 분노에 떨어야 했다. 그 참담한 기억들이 생생한 가운데 나는 군복무를 마치고, 전화의 그을음이 채 가시지 않은 생활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놀랍고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한영수 사진집 <삶>(1987년)의 서문 '회복기의 사람들' 중에서)
한영수(1933년 출생~1999년 작고) 작가는 한국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온 후 사진 분야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은 전쟁 직후였기 때문에 황폐하고 가난했다.
전쟁 이후의 우리나라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사진을 시작했고, 한국 1세대 광고 사진가로 명성을 얻어 유명 회사의 사진을 모두 촬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사진 라이브러리를 운영했으며, 산업화로 인해 사라져가는 자연 풍광을 기록하는 것에도 관심이 컸다.
그는 작위적으로 예술 작품을 창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서 우연한 순간을 포착하는 작가로 불린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사람들은 희망적이고 시크하다. 전쟁의 상처로 인해 절망에 빠졌거나 가난에 찌든 한국인을 상상하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통쾌하게 바꾸어주는 사진이다. 이 모든 장면이 연출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점이 더욱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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