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정취가 무르익은 4월 말, 짙푸른 녹음이 더해가는 계절 제주에서 시작된 한영수 사진전
서울, 1956-1963년갤러리에 들어서면 흑백의 사진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가운데 건물에 뚫린 창 너머로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걸어가는 남녀가 보인다. 흑백사진 전면을 가득 채운 건물은 낡고 허름하고 부서진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사진가 한영수의 사진이 보여주는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된 구도와 배치가 눈을 사로잡는다. 이 사진은 마치 20세기 초 프랑스 거리에서 로베르 드와노(Robert Doisneau, 1912-1994)가 찍은 낭만적인 사진 한 컷을 생각나게 한다. 누군가는 프랑스 사진 거장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Henri Cartier-Bresson)이 활동했던 매그넘의 작가 중 한 명이나 윌리 로리스(Willy Ronis)의 사진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진 옆에 붙은 <서울 명동, 1956년>이라는 표제를 보는 순간 의아함이 앞선다.
이때는 한국전쟁을 겪은 직후였다. 당시 서울은 폐허로부터 재건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던 때였다. 금세기 한국 역사에서 가장 가난했던 시기였다.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끼니 걱정에 하루를 살기에도 벅찼고, 어떠한 여유도 가질 수 없었던 힘든 시기였다고 했다. 그러나 한영수의 사진을 통해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서울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가 사진 앞에서 의아함을 느낀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의 기억이 보기 좋게 어긋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사진을 통해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에도 웃음짓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음을 새삼 알게 된다. 그리고 다시 따뜻해진 눈으로 한영수가 담아낸 시간들을 천천히 음미하게 된다.
이러한 '어긋남'이 주는 묘한 매력이 바로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이 전시를 찾은 당신에게 주는 사진가 한영수의 선물이다.
한영수(1933-1999)1933년 개성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한영수는 어린 시절 그림, 특히 드로잉에 재능을 보였지만 집안의 반대로 전문적인 미술수업을 받지 못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그는 학도병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전쟁의 참상은 그에게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는 이 시기를 이렇게 회고한다.
"전쟁은 많은 것을 앗아갔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무자비하게 짓밟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복과 희망, 나아가 인류 자체를 짓밟았습니다. 마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그것은 지구상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폐허, 절망, 기근, 슬픔을 남겼습니다. 38선의 갑작스러운 출현으로 민족독립의 짧은 행복은 그 빛을 잃었고, 비극적 1950년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군인으로 전선을 넘나들며 이 비극을 경험했고 수많은 참담한 장면들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이 끔찍한 기억들, 전쟁으로 그을린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삶의 한가운데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사람들은 또 그렇게 살아간다'는 너무나 평범한 사실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의 후유증으로 고전했지만 1950년대 우리는 다시 회복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도시와 농촌이 재건되는 모습에 희망을 찾을 수 있었고, 사람들이 붐비는 시장, 그리고 내가 잊고 있던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천천히 그러나 착실하게, 그렇게 나는 나의 인간성을 되찾아가고 있었습니다."
1955년 군대에서 돌아온 한영수는 서울을 사진으로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한국 최초의 리얼리즘 사진 연구단체인 신선회(新線會)에 가입하면서 사진작가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 시기 한영수는 거리에서 생활주의 사진,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으며 찰나적 일상과 생생한 표정들을 세련된 터치로 포착해냈다.
이때 체화시킨 세련되고 현대적인 시선은 이후 그가 1세대 광고사진가로 활약하는 기반이 되었다. 화려한 패션계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뛰어난 능력과 그래픽적 재능이 이때 꽃을 피운 것이다. 백화점의 카탈로그를 찍은 것을 기점으로 광고 사진을 주로 찍게 된 한영수는 1966년 광고사진 스튜디오인 '한영수 사진연구소'를 설립하고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광고사진 1세대로서 삼성전자, 쥬단학화장품, 종근당 등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광고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활동을 펼쳤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한영수는 다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2017년, 전 세계 사진작가들의 구심점으로서의 상징성을 갖는 뉴욕 국제사진센터(ICP,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에서 한국 사진작가로는 최초로 작품이 영구 소장되면서, 동시에 개인전 <한영수:사진으로 본 서울, 1956–63>이 개최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 다수의 전시에 초대받으며, 한국 사진사에서 빠져선 안될 중요한 사진작가임을 인정받고 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의 사진들은 놀라움으로 다가옵니다. 흠잡을 곳 없는 구도와 완벽한 타이밍, 그리고 사회 구석에 대한 세심한 관심은 데이비드 시무어(David Symour), 마크 리부(Marc Riboud)와 같은 초기 매그넘 작가들의 작품을 연상시킵니다."(크리스토퍼 필립스, ICP겸임큐레이터)
"아름다움은 보는 자의 눈에 있다."일반적으로 전후(戰後)의 사진들은 우리가 기억하듯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전달하는 보도성이 강한 사진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휴머니티를 다루고자 했던 한영수는 그 참상 속에서 찰라적으로 빛나는 아름다움을 포착하려고 했다. 허름한 옷차림을 한 소년이 우울한 얼굴로 쪼그리고 앉아있는 모습, 부서져 버린 집들이 아름답지는 않다. 그러나 한영수는 바로 거기에서 아름다운 순간을 찾아낸다.
"앵글의 각도에 따라 그 소년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이 남루함 속에서 풍겨 나온다면 그것은 성공한 사진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의미가 더 빨리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는 말입니다.(한영수)"
한영수의 독창적인 시선은 그 소년의 제스추어는 물론, 소년이 기대고 있는 건물과 풍광, 그리고 그가 살아온 도시 서울을 평화롭고 따듯하게 담아냈다. 그는 시대가 주는 우울함에 매몰되지 않았다. '사진은 사실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는 시대적 조류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생명력을 바라보았다. 그는 시선, 앵글, 프레임을 통해 탁월한 대상들을 선택하고, 뛰어난 타이밍으로 상황을 포착하여 완벽한 구도를 창조해냈다. 한영수는 서울을 오로지 그만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2022년 현재, 그의 사진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과 다르지 않다. 시간을 선취한 사진가 한영수가 재창조해낸 새로운 세계가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의 사진에는 어디든 항상 사람이 있다. 그는 을지로, 명동, 충무로, 퇴계로, 남대문, 종로, 서울역, 뚝섬, 한강 인도교 주변, 노들섬, 마포, 세검정, 청계천, 한남동 등 서울 곳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화려한 옷가게 쇼윈도와 다채로운 간판이 붙은 번화가에도, 사람들이 물건을 한껏 펼쳐 놓은 시장에도, 비가 오는 날도, 꽃들이 만발한 날에도, 한여름 강가에도, 어디에나 사람들이 등장한다. 한껏 치장하고 자신만만하게 걸어가는 아가씨들도, 무심한 듯 구두를 맡긴 아저씨도, 어린 동생을 업고 산동네 언덕에서 있는 소녀도,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어머니들도 낙담하거나 서글픈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묵묵히, 아니 활기차게 살아간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그들의 눈빛에, 몸짓에 담겨있다.
어떤 이는 물을지도 모른다. 비참했던 시절을 아름답게만 담는게 무슨 의미를 갖느냐고. 문화비평가 이영준은 이 질문에 '사진가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한 문제라고 답한다. 우리는 한영수가 1950년대부터 서울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새롭게 탄생해가는 과정을 기록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현대적 시스템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그 시대의 모던하고 세련된 감각, 그 모든 순간들을 담아내고자 했다. 이것들을 표현해낼 독창적인 시각언어를 체현하기 위해 그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예술가의 성취는 언제나 놀랍다. 한영수의 사진 속 서울은 지금 우리가 보기에도 너무나 현대적이다. 그의 사진은 2022년 현재, 우리의 시각언어에 견주어 전혀 손색없는 세련된 감성을 보여준다.
교감
이렇게 우리는 소통의 새로운 창구를 발견한다. 작가 한영수가 작고한 후, 한영수가 남긴 필름들과 기록들을 보존하고 사진집으로 엮어 세상에 알리는 사업들을 진행하는 <한영수문화재단>을 설립한 그의 딸 한선정 대표는 한영수를 좋아하는 팬층의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누구나 사진을 쉽게 찍고 많은 사진을 생활 속에서 항상 접하고 있는 시대이니, 좋은 사진을 바라보는 안목이 높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지금의 세대들은 사진을 통해 많은 교감을 할 수 있는 비주얼 세대이다. 그들은 세련된 감각으로 새로움을 추구한다. 바로 이 새로움에 대한 감각적 민감도가 서로 통하는 것인지 모른다. "전후의 서울을 기억하지 못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가 한영수가 세련되게 표현한 사진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보고, 자신도 모르는 도시의 매력에 빠져 천천히 사진들을 바라보는 모습을 볼 때, 또 그들이 한영수 사진집을 소장하고 싶어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어요. 그리고 그 시대를 기억하고 있는 어르신들로부터 그동안 잊고 있던 행복한 순간들이 떠오른다는 말을 들을 때 제 마음도 따뜻해져 옵니다"라고 한선정 대표는 말한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도시에서도, 그 상흔을 모두 씻어내고 화려하게 재건된 도시에서도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은 똑같다.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 그리고 꾀죄죄한 얼굴로 재미있는 놀이에 열중하는 아이들의 신나는 몸짓이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진다. 한영수의 사진이 담아낸 것처럼, 아이들의 환히 웃는 얼굴은 삶을 긍정하며 살아낼 수 있는 에너지를 회복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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